Thursday, January 1, 2015

넥스트랜스 창업기_1

정확히 10년전 창업 처음 사무실 구할 돈이 없어 후배 사무실에 책상 한칸을 얻어 시작했다.
책상 하나 주제에 직원을 뽑으니 후배가 방을 비워 주며 여기를 쓰시라고 했다...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클라이언트를 찾아서 헤매다 간신히 만나면 '뭘 해주실수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들었다.
'뭐든지 할수 있어요.사업계획서도 만들어 드리고 해외에서 투자유치도 해드릴 수 있구요...'
아침부터 밤까지 아니 새벽까지 한 기업의 모든것을 파악하느라 온몸이 죽을것 같았지만 클라이언트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외국 투자자가 혹시나 요청할 자료가 있을까 미리 미리 다 파악하여 준비해 놓고 요청이 오면 10분안에 보내주었다.
외국 투자자는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답을 주느냐'고 놀라워했고 그 일이 있은지 1년 후에 홍콩 재벌그룹 부사장은 사석에서 '내가 너를 신뢰하는 이유는 이렇게 빨리 답을 주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아~ 난 그냥 불안감에, 잘해보려고 했는데 이런게 신뢰였구나'라고 깨달았다.
이렇게 2004년 창업후 1년이 지나 2005년이 되었다.


2005년 개인적으로 투자를 하기위해 실리콘밸리를 갔다.
책에서만 보던 수십개 기업들의 로고가 눈에 보였다.
시스코, 노텔, 인텔, 이베이, 애플, 오라클, 야후, EMC등 엄청난 규모의 기업들의 본사가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이들을 외부에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관계를 만들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다.
그러기위해서는 누구를 시작점으로 컨택해야할까 고민하던중에 우연히 Wilson Sonsini Goodrich & Rosati라는 실리콘밸리 top law firm의 변호사를 만나게되었다.
미국은 법률의 나라라고 할만큼 법이 중요했기에 벤처기업들은 로펌을 통해 VC, 대형기업들과 연결되어 있었고 대학들과도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고마운 변호사를 통해 미국 유수의 VC들을 소개받게 되었고 구글, 야후, 인텔뿐 아니라 Pagemill partners라는 M&A전문기업도 만나게 되었다.
이후 1년에 4-5번씩 수년간 몇달씩 그곳 호텔을 전전하면서 그들의 삶을 관찰하였다.
당시에는 한국기업의 위상도 낮고 앱스토어나 SNS도 없었기에 마케팅을 통해 시장을 뚫는다는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 기업투자를 위해 VC를 방문하면 "여기도 투자할것이 널려있는데 왜 그 먼 한국까지 가야하느냐?"는 얘기도 듣고 "30 mile rule이 있어 그 거리를 넘어서면 검토하지않는다"라는 말도 들었다.
가장 압권이었던 말은 "Marketing의 M자가 뭘 의미하는지 아느냐?"는 질문이었다.'M'은 'Money'인데 한국기업이 얼마나 쏟아 부을 준비가 되어있냐는 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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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간들을 거의 10년을 보내면서 많은 좌절과 절망이 있었지만 한류의 바람, 스마트폰과 앱스토어 그리고 SNS의 등장으로 이러한 한계가 점점 극복되어지고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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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10년은 한국경제는 불확실성과 장기침체의 위기에 놓일수 있지만 대한민국 스타트업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할거라 믿는다.
서비스 기업의 글로벌화는 혼자 잘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위상의 변화, 국가 영향력의 증대, 한국 문화의 글로벌 침투등 모든것이 맞아떨어지는 때와 발을 맞추어 나아가야하기 때문이다.
80-90년대 팝송과 일본음악, 일본만화등이 문화적 침투를 했던것을 기억해보면 지금 대한민국의 한류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스타트업들에게는 고객이 한국 스타트업들을 보는 눈높이를 바꾸어주는 엄청난 자산이다.